시가 피어난 의성의 늦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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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피어난 의성의 늦가을

늦가을의 정취가 짙어진 의성에서 한 편의 시가 수많은 마음으로 번지는 낭송 무대가 펼쳐졌다. 제19회 의성시낭송축제는 의성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 ‘한 편의 시, 천 개의 마음에 꽃피다’를 주제로 열렸다. 시의 언어를 목소리와 표정, 음악과 연기로 전하며 가족과 자연, 역사의 의미를 차례로 조명한 자리였다.

정성으로 준비한 축제의 시작

행사를 앞둔 무대에서는 마이크 음향을 조정하고 낭송 순서와 이동 동선을 확인하는 준비가 이어졌다. 낭송가들은 붉은 치마와 흰 저고리, 노란 치마와 녹색 저고리, 흰 모시 한복 등 저마다 단정한 한복 차림으로 행사장 입구에 섰다. 방문객을 맞이하고 행사 팸플릿을 건네며 기념 촬영에도 함께했다.

객석은 반가운 인사와 정겨운 웃음소리 속에서 하나둘 채워졌다. 진행자의 힘 있고 또렷한 목소리가 축제의 개막을 알리면서 행사장에는 앞으로 펼쳐질 낭송과 공연을 기다리는 기대감이 감돌았다.

혼성 삼중창으로 연 문학 무대

오프닝 컬처라인 공연에는 혼성 3중창 베르디아니의 송승주, 이은경, 김대엽이 올랐다. 세 사람은 정지용의 시에 김희갑이 곡을 붙인 ‘향수’를 비롯해 에릭 레비의 ‘챔피언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주요 곡을 들려줬다. 서로 다른 음색이 어우러진 화음이 낭송축제의 첫 장면을 풍성하게 채웠다.

장효식 의성시낭송가협회 회장은 자작시 ‘꽃을 안다’를 낭송하며 본격적인 축제의 문을 열었다. 차분한 목소리로 전달된 시어는 음악 공연에서 시 낭송으로 이어지는 무대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가족의 기억을 깨운 제1부

제1부는 김정남이 연출한 ‘가족사랑 시향으로 물들이다’를 주제로 꾸며졌다. 김미자는 유병록의 ‘식구’를 낭송하며 가족이라는 이름에 담긴 소중함을 전했다. 이어 가족의 정과 삶의 기억을 담은 작품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 엄다경의 ‘아버지의 아궁이’
  • 기형도의 ‘엄마 걱정’
  • 복효근의 ‘외줄 위에서’
  • 문병란의 ‘불혹의 연가’
  • 조향미의 ‘온돌방’

‘아버지의 아궁이’는 불을 지피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고, ‘온돌방’은 따뜻한 방 안에 쌓인 가족의 정과 옛 생활의 풍경을 환기했다. 낭송이 이어지는 동안 객석은 시가 불러낸 가족의 사랑과 어린 시절의 기억을 조용히 마주하는 분위기에 잠겼다.

피아노 선율로 이어진 여운

피아니스트 권영국은 ‘가을의 속삭임’과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했다. ‘가을의 속삭임’은 후반부로 향할수록 맑고 편안한 선율을 들려줬으며, 경쾌한 흐름은 낭송 무대 사이에 산뜻한 변화를 더했다. 피아노 소리는 늦가을을 주제로 한 축제의 정서와 어우러지며 다음 순서로 이어지는 길을 열었다.

시와 함께 숲을 거닌 제2부

제2부 ‘시가 숲을 거닐다’에서는 꽃과 나무, 숲과 계절을 품은 작품들이 낭송됐다. ‘나 하나 꽃 피어’, ‘꽃’, ‘모란이 피기까지는’, ‘수선화에게’, ‘한계령을 위한 연가’, ‘대숲 아래에서’, ‘숲속의 성자’, ‘숲’이 차례로 소개됐다.

어린이들도 무대에 올라 맑은 목소리로 시를 전했다. 성인 낭송가들의 깊고 안정된 표현과 어린이들의 꾸밈없는 목소리가 한 무대에서 이어지며 세대를 아우르는 시 낭송의 모습을 보여줬다. 객석은 어린이들이 시구를 또박또박 전하는 장면에 집중했다.

해금과 가야금 공연도 마련됐다. 연주자들은 ‘고향의 봄’, ‘상사화’, ‘인연’을 우리 전통 악기의 선율로 들려줬다. 해금의 길고 섬세한 음색과 가야금의 맑은 울림이 어우러지면서 행사장에는 잔잔한 여운이 이어졌다.

한시로 되살린 역사의 향기

제3부는 ‘한시로 느껴보는 역사의 향기’를 주제로 진행됐다. 퇴계 선생의 학문과 풍류를 담은 한시가 낭송 무대에 올랐다. 단순히 시를 읽는 방식에 머물지 않고 중간마다 연기와 퍼포먼스를 더한 극시 형태로 구성해 역사 속 장면을 보다 생동감 있게 전달했다.

낭송과 연기가 결합한 무대는 한시의 뜻과 정서를 관객이 장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가족의 삶을 다룬 제1부와 자연을 노래한 제2부에 이어 역사와 학문의 향기를 담은 제3부가 펼쳐지면서 축제의 주제도 한층 넓어졌다.

열아홉 번째 이어진 시의 울림

의성시낭송회는 2001년 한국문인협회 의성지부가 주관한 ‘의성 문학의 밤’의 시 낭송 대회를 계기로 출발했다. 이후 지역의 여러 행사에서 낭송을 통해 시를 알렸으며, 의성시낭송축제는 제19회를 맞았다.

이번 축제는 시를 목소리로 전하는 낭송을 중심에 두고 성악과 피아노, 해금과 가야금, 연기와 퍼포먼스를 함께 엮었다. 가족의 온기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다시 역사와 학문의 향기로 이어진 구성은 한 편의 시가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에게 닿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늦가을의 의성 청소년 문화의 집에는 낭송가의 목소리와 악기의 선율이 차분하게 머물렀다. 무대가 끝난 뒤에도 가족과 고향, 숲과 역사에 관한 시어는 긴 여운을 남겼다. 제19회 의성시낭송축제는 지역에서 이어온 낭송 문화의 흐름을 되짚고, 시가 건네는 위로와 공감의 가치를 다시 확인한 자리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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