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당 고택에 밴 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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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당 고택에 밴 두 이름

안동 들녘과 마주한 예안이씨충효당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우렁길 73에는 예안 이씨 이홍인 가문의 종택인 예안이씨충효당이 자리한다. 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낮은 기와채와 높은 누마루를 갖춘 별당이 마주하며, 집 옆 흙길 너머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진다. 고택의 단정한 선과 풍산 들녘의 탁 트인 풍경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충효당은 1551년에 지었다고 전해지며, 1971년 보물로 지정됐다. 수백 년의 세월을 품은 건축물이자 한 가문의 내력을 간직한 문화유산이다. 건물의 구조뿐 아니라 집 이름에 담긴 두 인물의 사연을 알고 보면 본채와 별당, 마당을 이해하는 폭도 한층 넓어진다.

충과 효를 품은 고택의 이름

충효당의 ‘충’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킨 이홍인의 행적에서 비롯됐다. 이홍인은 자신의 재산을 들여 의병을 모았고, 안동 구담리 일대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효’는 아픈 아버지를 정성껏 돌본 후손 이한오의 효행을 기린다. 충효당이라는 이름에는 나라를 위해 나선 충절과 부모를 섬긴 효행이 함께 담겨 있다. 오래된 집 한 채의 명칭이 가문의 역사와 두 인물의 삶을 전하는 기록 역할을 하는 셈이다.

초록빛 뜰과 오래된 기와집

집 주변에는 초록이 가득한 뜰이 조성돼 있다. 덩굴식물을 받치는 아치 아래로 길이 이어지고, 마당 한쪽의 큰 나무는 넉넉한 그늘을 만든다. 기와집을 중심으로 나무와 풀, 꽃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고택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뜰의 식물은 키와 잎 모양이 모두 다르다. 나무 아래에서 자라는 작은 풀부터 넓게 퍼진 연잎까지 다양한 식생이 한 공간에 자리한다. 일정한 모양으로 맞춰 심은 정원과는 다른 편안한 풍경이다. 담장 주변의 작은 꽃도 크고 오래된 건물 곁에서 제자리를 지키며 계절의 색을 더한다.

기와를 얹은 둥근 돌담 아래에도 꽃이 자라고, 그 옆에는 낮은 기와채가 앉아 있다. 규모가 큰 본채와 높은 별당만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마당 가장자리와 작은 채, 담장 아래의 식물까지 살피면 고택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두 이름을 지닌 별당 쌍수당

충효당의 별당은 누각 형태로 지은 쌍수당이다. 본채에서 떨어진 자리에 마루를 높여 설치했으며, 마루 아래에는 구조를 받치는 기둥이 그대로 드러난다. 비어 있는 마루 아래 공간 너머로 안쪽 마당과 낮은 기와채가 보여 여러 건물이 서로 마주하는 배치를 확인할 수 있다.

쌍수당이라는 이름에는 충과 효를 함께 닦는다는 뜻이 담겼다. 같은 별당에는 백원당이라는 이름도 걸려 있다. 백원당은 효가 모든 행실의 근본이라는 뜻의 ‘백행지원’에서 따온 말이다. 쌍수당과 백원당은 서로 다른 두 건물이 아니라 하나의 별당에 함께 붙은 두 이름이다.

이 별당은 손님을 맞거나 책을 읽는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됐다고 전한다. 바깥을 향해 열린 누마루와 온돌방을 함께 갖춘 점도 눈길을 끈다. 개방된 마루와 머물 수 있는 방을 한 건물에 배치해 종택의 생활 공간을 넓히는 기능을 맡았다.

누마루 아래와 기둥 사이에서는 안마당의 깊이와 주변 기와채의 높낮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높은 별당과 낮은 살림채가 대비되면서도 하나의 마당을 중심으로 연결된 고택의 짜임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안마당을 감싼 본채의 구조

본채는 안채와 사랑채가 연결된 ㅁ자형 집이다. 가운데 안마당을 두고 방과 마루, 부엌과 곳간 같은 살림 공간이 둘러선 형태다. 주거에 필요한 여러 기능을 하나의 울타리 안에 모아 배치한 오래된 주택의 구성을 살펴볼 수 있다.

사랑채에는 사랑방과 대청이 있고, 안채에는 부엌과 안방, 대청과 건넌방이 놓였다. 마당에서 바라보면 방 안의 세부보다 흰 벽과 짙은 나무 기둥, 작은 마루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여러 개의 문과 가까이 이어진 공간은 이 집에서 사람들이 오가며 생활했던 동선을 짐작하게 한다.

긴 지붕 아래에는 폭이 좁은 작은 마루가 방 앞을 따라 이어진다. 너른 대청과는 규모가 다르지만 문에서 문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건물 앞을 연결한다. 큰 지붕과 기둥뿐 아니라 이런 작은 생활 공간까지 함께 살피면 한옥이 실제 삶을 담았던 집이라는 점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안마당을 감싸는 본채가 아늑한 인상을 준다면, 집 바깥을 향한 앞마루는 들판을 조망하는 개방적인 공간에 가깝다. 긴 기와 처마 아래로 목재 문들이 나란히 놓였고, 앞마루에서는 집 밖의 들까지 시야가 이어진다. 한 건물 안에서도 안쪽과 바깥쪽 공간의 성격이 뚜렷하게 대비된다.

복원을 거쳐 이어진 고택의 시간

현재의 본채는 1974년 해체한 뒤 복원한 건물이다. 고택의 모든 부분이 처음 지었을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해체와 복원 등 여러 차례 손을 거쳐 집을 지켜온 과정 역시 충효당이 지나온 역사에 포함된다.

마당에는 풀이 자란 길이 이어지고, 대문 뒤편으로는 들판이 보인다. 흰 벽 가까이에서는 나무 기둥의 짙은 빛이 도드라지며, 건물 옆에서는 길게 뻗은 처마 끝을 확인할 수 있다. 밖에서 하나의 큰 지붕처럼 보이던 본채 안에는 방과 마루, 부엌과 곳간 같은 작은 공간이 촘촘히 모여 있다.

붉은빛 목재 문이 닫힌 작은 채도 눈에 띈다. 나뉜 문짝의 형태와 그 위를 덮은 지붕을 가까이 살피면 같은 기와집이라도 건물마다 서로 다른 표정을 지녔다는 점이 드러난다. 규모가 작은 건물도 종택의 생활과 공간 구성을 보여주는 한 부분이다.

담장과 기와에서 확인하는 세부

담장 위에 한 줄로 올린 기와도 충효당에서 눈여겨볼 만한 요소다. 지붕을 넓게 덮은 기와와 달리 담장 위의 기와는 한 장 한 장의 형태가 또렷하게 보인다. 큰 건물의 전체 구조에서 시작해 처마와 문, 마루, 돌담과 기와로 시선을 옮기면 고택의 세부 구성을 차분히 확인할 수 있다.

마당 한가운데에서는 별당과 본채, 정원이 한 장면에 들어온다. 높은 누마루가 먼저 시선을 끌지만 안채 앞의 작은 마루와 여러 목재 문, 뜰의 연잎과 꽃도 각각 고유한 모습을 보여준다. 충효당은 웅장한 한 부분보다 크고 작은 공간이 함께 어우러져 종택의 생활상을 전하는 장소다.

문화유산과 종택을 함께 배려하는 관람

충효당은 국가가 지정한 문화유산인 동시에 한 가문의 종택이다. 문이 열려 있더라도 모든 방과 마루에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장 안내에 따라 관람하고, 문을 임의로 열거나 생활 공간 가까이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실내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마당에서는 본채의 배치와 별당의 누마루, 온돌방의 구성, 담장과 정원을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문화유산의 가치를 보존하면서 종택의 생활 영역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한 공간이다.

정충정효각으로 이어지는 인물 이야기

충효당의 이름에 담긴 인물 이야기는 풍산우체국 옆 예안이씨 정충정효각과도 연결된다. 이곳은 이홍인과 이한오의 충절과 효행을 기리는 정려를 모신 장소다. 충효당에서 집의 이름과 별당, 안마당의 구성을 살펴본 뒤 함께 확인하면 두 인물이 가문의 역사에 남긴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장소예안이씨충효당
위치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우렁길 73
건립 전승1551년
문화유산 지정1971년 보물 지정
주요 공간ㅁ자형 본채, 쌍수당 겸 백원당, 안마당, 뜰과 돌담
본채 이력1974년 해체 후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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