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고찰 밝힌 원효의 밤

천년 신라의 역사와 불교문화가 깃든 경주 분황사에서 2026년 10월 17일 원효예술제가 열렸다. 단 하루 진행된 이번 행사는 원효대사의 정신을 기리는 동시에 탑돌이와 공양, 문화예술을 통해 전통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로 마련됐다.
행사의 주제는 ‘분황사에 머문 새벽’이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사찰과 문화유산을 배경으로 등불이 이어지고 사람들이 천천히 걸음을 맞추면서, 분황사 일대에는 차분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원효의 정신을 문화로 되새긴 자리
원효대사는 신라를 대표하는 고승으로, 불교 사상을 널리 알리고 많은 사람에게 깨달음의 길을 전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분황사에는 원효대사의 발자취와 관련된 이야기가 풍부하게 전해진다.
원효예술제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원효대사의 정신과 가르침을 문화와 예술로 되새기는 행사다. 전통을 단순히 과거의 유산으로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문화 활동을 통해 그 뜻을 다시 살펴보는 데 의미를 뒀다.
역사적인 장소에서 열린 예술제라는 점은 행사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했다. 천년 고찰이 품은 시간의 깊이와 문화예술이 전하는 감동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졌다.
선덕여왕 때 창건된 분황사
분황사는 신라 선덕여왕 3년인 634년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신라의 역사와 불교문화를 함께 살필 수 있는 공간이자 원효대사의 발자취가 남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행사가 열린 분황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분황로 94-11에 자리한다. 오래된 사찰의 경내와 문화유산이 예술제의 배경을 이루면서, 일반적인 공연장과는 다른 고즈넉한 정취를 드러냈다.
현장에서는 빠르고 화려한 움직임보다 천천히 걷고 마음을 모으는 전통문화의 흐름이 두드러졌다. 참가자들이 석탑 주변에서 발걸음을 맞추고 등불이 어둠을 밝히면서, 분황사가 지닌 역사성이 자연스럽게 부각됐다.
신라의 기술을 보여주는 모전석탑
분황사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은 국보 분황사 모전석탑이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이 석탑은 신라시대의 건축 기술과 예술성을 보여주는 소중한 유산이다.
오랜 세월을 견딘 석탑의 모습은 천년 전 신라의 역사와 당시 사람들의 신앙을 떠올리게 한다. 원효예술제는 이러한 문화유산 가까이에서 열려, 행사의 전통적 의미와 장소의 역사적 가치를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분황사 모전석탑은 단순한 행사 배경이 아니라 신라의 시간과 신앙을 현재에 이어주는 중심적인 존재였다. 관람객들은 석탑과 사찰 경내를 바라보며 문화유산에 담긴 이야기를 되새길 수 있었다.
마음을 모아 걷는 탑돌이
원효예술제의 주요 전통문화 행사 가운데 하나는 탑돌이였다. 탑돌이는 사람들이 탑 주위를 천천히 걸으며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이웃과 사회의 평안을 바라는 마음을 모으는 전통이다.
여러 사람이 한 걸음씩 속도를 맞춰 걷는 모습에는 서로를 배려하는 태도와 공동체의 의미가 담겼다. 개인의 소망뿐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안까지 기원한다는 점에서 탑돌이의 의미가 더욱 깊어졌다.
‘분황사에 머문 새벽’이라는 주제도 탑돌이와 맞닿아 있었다. 조용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지나온 시간에 감사하며, 앞으로의 시간을 희망으로 채워가는 과정이 행사 전반에 녹아들었다.
일상의 빠른 움직임에서 잠시 벗어나 천천히 걷는 시간은 전통문화를 몸으로 경험하게 했다. 오래 이어진 의식이 오늘날에도 마음의 평온과 공동체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천여 개 등불이 밝힌 분황사
탑돌이가 진행되는 동안 주변 조명이 꺼지고 천여 개의 등불이 분황사 일대를 밝혔다. 어둠 속에서 이어진 불빛은 오래된 석탑과 사찰 경내를 은은하게 비추며 장엄하고 고요한 풍경을 만들었다.
등불을 따라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분황사의 역사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졌다. 밝은 낮에 문화유산을 관람하는 것과 달리, 밤의 고찰에서는 불빛과 발걸음이 행사의 흐름을 이끌었다.
천여 개의 등불과 탑돌이가 만난 순간은 원효예술제가 전하려는 전통문화의 의미를 선명하게 보여줬다. 빛은 분황사 주변을 밝히는 동시에 건강과 행복, 이웃의 평안을 바라는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상징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정성과 나눔을 담은 공양
원효예술제에서는 불교문화의 하나인 공양의 의미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양은 부처님께 정성을 올리거나 스님에게 음식과 필요한 물품을 올리는 일뿐 아니라, 감사와 자비의 마음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전통과 연결된다.
공양에는 음식을 마련하는 정성과 이를 감사히 받아들이는 마음,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려는 배려가 담겨 있다. 따라서 공양은 한 끼를 제공하는 행위를 넘어 공동체 안에서 정성과 나눔을 실천하는 문화로 이해할 수 있다.
분황사는 행사 당일 오후 5시 30분부터 6시 30분까지 주먹밥과 국수를 넉넉히 마련해 공양했다. 참석자들은 준비된 음식을 나누며 저녁 식사를 함께했고, 현장에는 전통문화가 강조하는 감사와 배려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역사와 예술이 만난 하루
2026년 원효예술제는 하루 동안 진행됐지만, 원효대사의 정신과 분황사의 역사, 탑돌이와 공양의 전통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분황사를 배경으로 펼쳐진 문화예술은 일상적인 공연과 다른 분위기를 전했다. 국보 분황사 모전석탑과 천여 개의 등불, 탑돌이에 참여한 사람들의 느린 발걸음이 어우러지면서 고찰 특유의 깊고 차분한 풍경이 이어졌다.
원효예술제는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정신을 탑돌이와 공양, 예술을 통해 되새긴 행사였다. 신라의 역사와 불교문화가 살아 있는 분황사에서 전통의 가치와 공동체의 의미를 함께 확인한 하루였다.
